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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오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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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일랜드 태생의 영국 연극/영화 배우. 1960년대부터 할리우드의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배우였다. 대표작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2. 출생[편집]
1932년 아일랜드 출신의 마권업자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3세에 학교를 자퇴하고, 각종 아르바이트로 활동했고, 요크셔 이브닝 뉴스라는 신문사의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회사의 편집장은 그를 "배우를 해 보라"고 하며 해고해 버렸고(...), 홧김에 영국 왕립 연극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각종 영화에 출연했고, 1972년, <맨 오브 라만차>의 실사영화에 출연하면서 1인 3역을 연기하며 연기력과 스타성을 과시하기도 했으나, 한때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기도 했고, 설상가상으로 알코올중독과 위암으로 고생하기도 했으나 이를 극복하며 배우로 롱런하게 되었다. 마이클 케인과 리처드 해리스에 의하면 당시 연극계에서 정말 알아주는 주당이었다고 한다.
주로 왕이나 귀족 등 품격있는 역할을 맡았으나, 광기어린 역할도 자주 소화해내는 폭넓은 연기로 사랑받았던 배우였다. <마지막 황제>에서 선통제의 영국인 사부인 레지널드 존스턴 역을 맡은 바가 있으며 특히 2004년작인 <트로이>에서는 프리아모스로 출연,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비통함과, 왕의 위엄을 생생한 연기로 보여주며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2013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당시 아일랜드의 대통령 마이클 히긴스는 "아일랜드와 전세계는 영화계와 연극계의 거물 중 하나를 잃었다"며 추모했다.출처
3. 필모그래피[편집]
이상하게도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는데, 남우주연상에 여덟 번이나 노미네이트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아카데미에서는 2003년, 평생공로상을 수여하여 그의 연기인생에 경의를 표했다.
- 베켓 (1964) - 헨리 2세
- 백만달러의 사랑 (1966)
- 바르샤바의 밤 (1967)
- 겨울의 라이온 (1968) - 헨리 2세
- 굿바이 미스터 칩스 (1969)
- 맨 오브 라만차 (1972)
- 칼리굴라 (1979)
- 스턴트 맨 (1980)
- 지상의 낙원 (1986)
- 무지개 도둑 (1990)
- 킹 랄프 (1991): 윌링험
- 페어리 테일 (1997)
- 라스트 쇼 (2002)
- 우리친구 래시 (2005)
- 왕과의 하룻밤 (2006) - 사무엘
- 스타더스트 (2007) - 스톰홀드의 왕
- 다이아몬드 카르텔 (2017) : 촬영은 생전에 했으나, 개봉을 늦게 했다. 그의 유작이다.
[1] 단 오툴은 생전 자신이 영국에서 태어났는지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기록상으로는 오툴은 요크셔에서 태어난것으로 나온다.